성공회대학교
성공회대학교인권위원회
2026-06-08 · 조회 0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드러낸 민주주의의 빈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드러낸 민주주의의 빈틈
2026년 6월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송파구·강남구·광진구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소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결과 많은 시민들이 투표소 앞에서 수 시간을 대기해야 했으며,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정권은 중대하게 침해되었다. 이는 선거를 관리·운영할 책임이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명백한 실책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법률에 의거한 투표권은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이에 선거관리위원회는 시민의 참정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 의무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투표용지 부족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이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일한 준비와 대응 속에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침해된 사건이다. 시민이 자신의 투표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빈틈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드러낸다. 장애인, 농인,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이들에게 참정권은 과연 동등하게 보장되고 있는가.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관련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바, 실제로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배제된 주권자들의 참정권은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시각장애인 유권자의 투표 보조 요청이 거부당했고, 점자형 선거공보의 내용이 축소됨에 따라 알 권리도 침해됐었다. 더불어 접근성이 실현되지 않은 장소를 투표소로 운영하고, 발달장애인 유권자 관련 투표 지원 미개선, 선거토론회에서 수어 통역 2인 이상 배치 불수용 등 참정권 보장의 공백은 반복되었다.
이러한 참정권의 구조적 공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일한 시간과 건수가 곧바로 소득과 직결되는 구조 속에서 한 표의 행사마저 유예 당하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 주체들, 그리고 이분법적 행정 절차 앞에서 정체성을 증명하며 위축되어야 하는 성소수자, 지방선거 투표권을 지니고 있음에도 언어 장벽과 선거 정보의 철저한 행정적 소외 속에서 참정권을 유예 당하는 이주민 유권자 등, 이른바 ‘법 테두리에서 밀려났던 존재들’의 가려진 권리까지 다시금 호명하게 한다. 이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질문이다.
누군가에게 투표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누군가에게 투표는 여전히 기다림과 포기, 그리고 배제를 의미한다.
또한 이번 사태를 빌미로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재생산하는 극우세력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태의 본질은 부정선거의 증거가 아니라 선관위의 실책으로 시민의 참정권이 침해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선관위의 부실한 준비와 대응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시위대와 선관위 측의 대치가 이어지는 등 사회적 갈등마저 증폭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는 선거 결과가 아니라 선거 과정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태가 시민의 참정권과 공적 신뢰 모두를 훼손한 사건임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며, 참정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에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깊은 분노를 표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단 한 사람의 권리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데 있다. 참정권의 침해는 곧 인권의 후퇴이며, 선거에 대한 불신과 갈등의 확산은 우리 사회를 평화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모든 시민의 기본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인권과 평화의 민주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연대할 것이다.
2026년 6월 7일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
이 성명서는 성공회대학교 · 본교 아카이브에 수집·검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