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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광주캠퍼스 철학과 학생 45인 성명서 원문 1

전남대학교 광주캠퍼스

철학과 학생 45인

2026-06-11 수집 기준 · 조회 0

분노보다는 성찰을, 비판보다는 대안을


분노보다는 성찰을, 비판보다는 대안을 -6.3 ‘부실선거’를 바라보며- 지난 6월 3일, 선거의 공정한 관리라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기관에 의해 주권자의 참정권이 짓밟히는 황당하고 참담한 일이 일어났다. 이에 분노한 수많은 학생의 목소리가 이미 공론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지금, 우리의 성명이 이 사태 해결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혼란을 더하는 또 하나의 소음이 되는 건 아닌지, 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무거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리 내는 까닭은 여전히 할 말이 남았기 때문이다. 독립된 권력은 오만으로 흐르고, 견제받지 않는 구조는 방만을 부른다. 그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준엄한 심판자로 자임해왔으나, 정작 선거를 준비하고 관리할 본연의 책무에는 소홀했다. 또 중립성과 독립성이라는 명분을 방패막이 삼아 외부의 정당한 감시와 견제를 피해 왔다.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선관위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도덕적 해이는 이런 조직의 폐쇄성과 책임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적절한 개선 없이 방치되었다. 그 결과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하지 못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번 사태는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할 선거 제도에 근본적 불신을 초래함으로써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리는 부실한 선거 관리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선관위를 비롯한 모든 책임 있는 위정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적절한 제도적 개선 없는 말뿐인 사과와 사퇴만으로 결코 이 일을 끝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우려스러운 건 내란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하던 세력이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잠실 투표소와 올림픽공원 개표소 등지에서 공무원을 감금하고, 행인을 검문하는 등 폭력을 서슴지 않으며, 참정권 침해에 대한 시민의 정당한 분노를 왜곡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내란의 아픔을 딛고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했으나, 선관위의 중대한 과오로 극단주의자들과 음모론자들이 활개 칠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앞서,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주권자다. 책임 있는 주권자로서 우리는 이 사태와 관련된 위정자의 잘못과 민주주의를 기만하는 세력의 준동을 꾸짖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의 혼란한 사태가 결국 우리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 비롯되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주권자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였는지 스스로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주권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보다는 성찰이고, 비판보다는 대안이다. 불의를 향한 뜨거운 분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이다. 그러나 그 분노를 올바른 곳으로 이끄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성찰의 힘이다. 지금 공론장에 쌓아지는 성찰 없는 분노는 또 다른 혼란과 분열을 낳고, 이 사태의 주도권을 극단주의자들에게 넘기게 될 것이다. 오직 바른길만을 생명으로 하는 우리는 이제 규탄을 넘어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선관위에 대한 시민과 국회의 감시를 강화하고, 선거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개헌을 비롯한 법적·제도적 개혁을 이뤄, 모든 시민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받는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모든 책임 있는 당국은 이 사태의 총체적 진상을 국민 앞에 철저히 규명하고, 주권자의 권리를 침해한 모든 책임자를 처벌하라! 하나, 이번 부실선거를 빌미 삼아 민주주의를 기만하고 시민의 정당한 분노를 왜곡하는 극단주의 세력을 강력히 규탄한다! 하나, 분노보다는 성찰과 대안으로 극단과 혐오를 넘어 더 나은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을 모두에게 요청한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24학번 한승기 외 44인

이 성명서는 전남대학교 · 광주캠퍼스 아카이브에 수집·검수되었습니다.